창작창작 배움터로 탈바꿈한 시장 속 문화 공간│최윤정 ·관동산수

로컬캐스트
2026-08-2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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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편집자 주]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, 서로 다른 이름의 역할들이 층층이 쌓여있다. 대표, 작가, 교육자 등 겉으로는 분리된 직업처럼 보이지만,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만의 ‘뿌리’가 존재한다. 최윤정 관동산수 대표에게 그 뿌리는 창작자라는 정체성이었다. 필요에 따라 확장된 수많은 역할 속에서도 결국 그를 지탱한 것은 스스로 창작 세계를 탐구하고 해석하는 힘, 즉 창작의 독창성이었다. ‘관동산수 문화라운지’에서 만난 그의 여정은 한 사람이 어떻게 다양한 역할을 품은 채 하나의 길을 이어가는지 보여준다. 


강릉 중앙시장 그릇가게 위 3층에 위치한 '관동산수 문화라운지'는 서양화가인 최윤정이 연 복합문화공간이다. 그는 강릉 중앙시장에서 3대를 이어온 69년 전통 위에 자신만의 시선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. 그릇을 만지던 부모님의 오래된 손길과 창작 활동을 이어온 딸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한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풍경은 그 자체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준다.


최윤정 대표가 2020년에 처음 선보인 <관동산수> 작품은 이 공간의 출발점이다. 최윤정 대표가 나고 자란 관동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자, 예술이라는 언어로 세상과 연결되며 다시 보게 된 세계이기도 하다. 관동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본 그의 작품 세계에 접속하며 이번 인터뷰를 시작하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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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관동산수>가 창작물이기도 하죠. 작품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?

 

저에게 예술 작품은 감정적인 교류이기도 하지만, 시각적인 언어로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소통하며 그 공통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. 지역적인 것과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통점이 무엇일지 생각했을 때, ‘관동’이라는 옛지명이 제 정체성을 잘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. 그래서 <관동산수>로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.

 

<관동산수>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요. <관동산수>가 진경산수화와도 연결되는 거죠?

맞아요. 저는 ‘금강전도’라고 이전에 정선이 그렸던 금강산의 형태를 캔버스 위에 가져온 거예요. 진경산수화의 형태를 빌려오되, 그 안에 색을 채우고 제 이야기와 제가 느꼈던 감성을 담아낸 작업들이었죠. 왜냐하면 사실 금강산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지만, 제가 다 경험해보지 않은 거대한 자연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. 빈 캔버스를 봤을 때 느껴지는 그 막막함처럼요.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형태를 빌려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.

 

고향에 내려와서 다시 <관동산수> 창작을 시작했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?

 

제 고향이긴 하지만, 이 지역과 바뀐 공간이 낯설고 또 두려웠어요. 마치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비슷한 감정이었죠. 여기서 나고 자랐지만, 시간이 흘러 환경도 사람도 많이 변했잖아요. 저는 원래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, 그 ‘환경’이라는 건 단순히 주변 분위기만이 아니라 제가 창작하는 공간까지 포함돼요. 그래서 새로운 공간에서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. 결국 그 공간과 계속 부딪히고, 경험하고, 살피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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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동을 그림 소재로 직접 탐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?

 

저한테는 낯선 ‘관동’이라는 지방의 환경이, 다른 사람들 눈에서는 오래전부터 아름답다고 여겨져 왔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웠어요. 결국 그림이 전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가 ‘아름다움을 표현해 전달하는 것’이라고 생각하는데,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전달할지가 계속 고민됐죠. 그러다 자연스럽게 관동팔경까지 생각이 이어졌고, 그 세계가 제가 평소 추구해 왔던 이상향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.


제가 작품을 통해 가장 크게 뿌리 삼아온 지향점은 ‘평화롭게 공존하는 유토피아’를 전하는 것이었거든요. 동양적 사상과 감성을 서양화라는 매체로 풀어왔는데, 관동팔경이 지닌 세계관과 제가 지향해온 그 평화로운 이상세계가 겹쳐 보였어요. 그래서 자연스럽게 ‘관동’이라는 공간을 탐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, 그 시작점이 바로 제 창작 스튜디오가 있던 고성이었습니다.

 

고성에서의 경험이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나요?

 

발달장애 아이들이 무지개를 자주 그리는 걸 보면서 ‘왜 하필 무지개일까?’라는 궁금함이 있었어요. 그러다 건봉사에서 홍교를 본 뒤, 자연스럽게 제 작업에도 무지개가 등장하기 시작했죠. 제 작품에는 원래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많이 나오는데, 그 연장선에서 무지개도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거예요.


보통은 무지개를 동심적이거나 유치하게 보는 시선도 있잖아요. 그런데 제 작품을 본 어떤 분들은 오히려 ‘용감하다’고 표현해 주시더라고요. 그 말을 곱씹어 보니, 사실은 제가 사용한 무지개가 ‘순수하다’는 의미에 가까웠어요. 아이들이 그리는 순수함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, 어른이 그런 순수함을 작품 안에서 그대로 표현하는 데에는 오히려 용기가 필요하잖아요.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, 제 작품 속 무지개가 가진 의미도 새롭게 느껴졌고, 그 순수함을 표현하려는 제 태도 역시 더 확고해졌던 것 같아요. 그래서 이런 과정들이 제 창작 방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고, 발달장애 창작자 아이들이 왜 무지개를 그리는지, 그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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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달장애 아동들의 동료 작가라고 표현하셨는데, 그 동료는 대표님한테 어떤 존재인가요?

저는 제도권의 교육을 받았지만, 그 친구들은 그렇지 않잖아요. 그래서 처음 진입하는 지점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. 하지만 막상 창작하는 순간이나, 그 창작을 보여주는 방식과 과정에서는 우리 모두가 같은 결을 가지고 있어요. 다만 제가 제도권 교육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에 멘토라는 역할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죠.

 

그 친구들도 계속 성장할 것이고, 저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어갈 테니까요. 그랬을 때 창작자로서 누가 더 좋은 작가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. 그래서 저는 ‘성장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’ 그 자체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, 그래서 동료라고 느낍니다.

 

제가 ‘요술 램프’라는 전시의 서문 작업을 했을 때도 ‘동행 친구’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. 창작이라는 과정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잖아요. 지금은 제가 그 친구의 친구가 되어주지만, 나중에 제가 나이가 들면 그 친구가 제 친구가 되어주고, 또 언젠가는 그가 더 잘 되어서 저를 이끌어줄 수도 있는 그런 관계요. 저는 그런 관계가 정말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.


📌최윤정 관동산수 대표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면?

인터뷰집 『문화가 된 직업, 강릉에서 나다운 길을 걷는 사람들』에서 관동산수의 성장 스토리를 확인해 보세요! ▼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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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은 강릉의 독립서점 강다방 이야기공장, 아물다, 시골책방 자몽, 윤슬서림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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